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법과 정의 (문단 편집) == 역사 == 2001년 [[레흐 카친스키]],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형제[* 일란성 쌍둥이이며, 이 점이 유명하다. 사족으로 두 사람은 과거 아역 배우로 활동한 적이 있다.]에 의해 창당되었다. 창당 전 두 형제는 폴란드의 민주화를 주도한 중도우파 정당연합인 연대선거행동 소속이었으며, 한때는 민주화의 주역인 [[레흐 바웬사]]와 같이 투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중도적인 노선을 표방한 바웬사와, 선명한 우파 노선을 표방한 카친스키 형제와 갈등이 벌어졌고, 결국 카친스키 형제를 위시로 한 연합 내 우파가 탈퇴해 법과 정의당을 창당한다. 이로서 연대선거행동은 해체되었으며, 잔류 세력들은 [[시민 연단]]으로 계승되었다. 법과 정의당은 곧바로 총선에 도전했지만, 이 당시 창당 행위가 역으로 우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결국 우파 양당은 [[폴란드 통일노동당|구 통일노동당]](공산정권 시절 집권정당)의 후신인 [[민주좌파연합]](이하 민좌련)에 패한다. 이 때 법과 정의당은 44석을 얻어 원내 4당에 그친다. 하지만 구 공산정권의 후신 세력이 재집권했다는 사실에 민주/보수 세력은 경각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 다시 연합하여 민좌련 정권에 맞서게 된다. 그러던 2002년 ~ 2004년 전후로 민좌련 정권은 리빈 게이트라는 대규모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면서 급속도로 인기를 잃었고, 이에 보수적 사회 정책 + 진보적 경제 정책을 표방한 법과 정의당은 구 공산정권 시절을 그리워한 장·노년층 유권자들을 대거 결집시킨다. 그리고 2005년 총선에서 법과 정의당·시민연단 연합은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고, 반대로 민좌련은 군소 정당으로 떡실신한다(...). 대선에서도 레흐 카친스키가 당선된 것은 덤이다. 그러나 막상 양당 연합이 압승하게 되자, 너무 크면 독이 된다고, 오히려 내부 총질을 벌이게 되고, 결국 양당의 대연정은 없었던 일이 되었다. 대신 극우 성향의 자주국방당 및 가족연합과 연정을 구성하게 되었으며, 이로서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보혁 양당제를 구성하던 폴란드는 몇 안되는 보수 양당제로 전환하게 된다. 이리하여 처음 집권한 법과 정의당 연정은 높은 지지율 속에서 순조롭게 출발했으며, 비록 극우 정당과 연정을 구성했지만, 그렇다고 법과 정의당까지 극우였던 것은 아니다. 물론 시민연단보다는 보수적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중도우파(내지 우파)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나름 자유주의 성향을 띄고 있었다. 또한 이때까지만 해도 권위주의적인 성향과 거리가 있었다.[* 언급했듯이 법과 정의당을 창당한 카친스키 형제는 '''민주화 운동가''' 출신이었다. 역으로 민좌련이 독재 정권의 후신 세력이었고, 따라서 국민들은 법과 정의당 = 민주 세력, 민좌련 = 반민주 세력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지지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연정의 부총리를 지낸 안제이 레퍼(자주국방당 대표)가 성범죄에 연루되면서, 연정의 주도자인 법과 정의당 또한 자연스레 타격을 입게 된다. 결국 이 여파로 2009년에 예정되어 있던 총선을 2년 앞당겨 2007년에 치르게 되었으며, 조기 총선에도 불구하고 해당 스캔들이 발목을 잡게 되자 시민연단에 패한다. 그나마 위안 거리가 있자면, 충분한 의석을 갖고 있는 제1야당으로서 아예 반사 이익도 보지 못하고 역으로 의석을 잃은 민좌련에 비하면 기반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여담이지만, 정작 스캔들의 주도자인 자주국방당 등은 아예 국회에서 쫓겨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